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발생한 피해 상황을 상세히 알아봅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피해 개요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신군부에 맞섰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수많은 사망자, 부상자, 행방불명자가 발생했으며, 이후에도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많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인명 피해
공식 통계
- 사망자: 163명 (보상 수령 기준), 실제 최소 165명 이상
- 행방불명자: 166명
- 부상자: 3,139명
- 구속·구금 등 기타 피해자: 1,589명
- 총 피해자: 약 5,189명
5·18 민주화 운동 관련 보상 신청자는 7,716명이었으며, 이 중 5,060명이 보상 인정을 받았습니다.
연령별/직업별 사망자 현황
연령대 | 사망자 수 | 직업 | 사망자 수 |
---|---|---|---|
14세 이하 | 8명 | 학생 | 27명 |
15~19세 | 36명 | 자영업 | 21명 |
20대 | 73명 | 회사원 | 14명 |
30대 | 26명 | 운전사 | 11명 |
40대 | 9명 | 공무원 | 2명 |
50대 | 6명 | 직공 | 34명 |
60대 | 4명 | 무직 | 34명 |
확인 불가 | 1명 | 기타 | - |
특히 14세 이하 어린이도 8명이 희생됐으며, 가장 어린 희생자는 단 4살에 불과했습니다.
계엄군의 고문과 인권 유린
연행자 고문 실태
5·18 기간 동안 약 3,000여 명이 계엄군에 의해 연행되어 광주교도소, 상무대 등으로 끌려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폭행과 고문이 자행되었습니다.
고문 방법 사례
- 물고문, 전기고문, 대검으로 살갗을 벗기기
- 담뱃불로 얼굴 지지기(재떨이 만들기)
- 몽둥이로 가슴 때리기, 똥 묻히기 강요
- 송곳으로 손톱 밑 찌르기, 발가락 절단
연행자들은 평균 9.5회 이상의 신체·심리적 고문을 겪었으며,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받았습니다.
5·18 피해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TSD 증상
5·18 체험자들은 사건 이후에도 만성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 생생한 재경험 (플래시백)
- 심각한 불면증과 악몽
- 우울증, 불안장애, 알코올 중독 병발
5·18 피해자들의 PTSD 발병률은 일반인 대비 압도적으로 높으며, 자살률도 10.4%로 일반인 대비 500배에 달합니다. 2007년 기준, 부상 후 사망한 376명 중 39명이 자살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피해자는 현재까지도 국가 차원의 온전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완전한 명예회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초 발포 명령자 규명, 행방불명자 찾기, 고문 가해자 처벌 등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5·18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과제입니다.